Journal · City Essay · Jeju

제주 동백,
바람의 색.

2026.05.28 · 4 min read

제주에 처음 간 사람들은 대개 바다를 보러 갑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면, 이 섬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제주의 돌담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돌 사이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대충 쌓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일부러 그렇게 쌓습니다.

바람을 막으려고 벽을 촘촘히 세우면 오히려 무너집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바람이 지나갈 길을 남겨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담은 바람을 이긴 담이 아니라, 바람을 통과시킨 담입니다.

동백은 시들지 않고 떨어집니다

겨울 제주에서 동백을 보면 조금 놀라게 됩니다. 다른 꽃처럼 꽃잎이 한 장씩 마르며 지지 않습니다. 어느 날 통째로, 툭 하고 떨어집니다.

그래서 동백나무 아래에는 아직 붉은 꽃들이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나무 위에도 붉고 땅 위에도 붉습니다. 가장 좋은 상태에서 그냥 놓아버리는 것 —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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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색은 검정에서 시작합니다

제주는 화산섬입니다. 밭담도 검고, 해안의 바위도 검고, 흙도 육지보다 어둡습니다. 관광 사진 속의 제주는 파랗지만, 실제로 이 섬을 걸으면 발밑은 거의 항상 검정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검정 때문에 다른 색들이 유난히 선명해집니다. 겨울 동백의 붉은색, 11월 밭에 매달린 감귤의 주황, 얕은 바다의 청록. 밝은 바탕 위에 있었다면 그저 예쁜 색이었을 것들이, 검은 바탕 위에서는 또렷하게 도드라집니다.

제주의 색은 화려해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검은 바탕 위에 있어서 선명합니다.

그래서 제주에는 이 색을 넣었습니다

코리의 제주 헤어롤은 감귤빛에서 시작했습니다. 밝고 따뜻한 주황이지만, 그 아래에 어두운 톤을 함께 두었습니다. 주황 하나만 있으면 그냥 밝은 물건이 되지만, 어두운 색이 받쳐주면 제주에서 본 그 대비가 됩니다.

바람이 지나갈 자리를 남겨둔 돌담처럼, 색에도 비워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